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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소개




도마 안중근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독립운동가입니다.


안중근의사는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적 이름은 안응칠이였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일본에게 외교권까지 빼앗기자 안중근은 강원도에서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안중근은 인재 양성에도 힘을 썼는데 1906년에는 삼흥학교를 1907년에는 돈의학교를 세웁니다. 한일신협약에 따라 우리나라 군대가 해산되자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의병 운동에 참가하고 참모장까지 돼서 일본과 싸웁니다.

안중근이 서른살 되던 1909년 10월에 이토히로부미가 러시와 회담 때문에 만주 하얼빈에 오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안중근은 10월 26일 일본인으로 가장하여 하얼빈역에 잠입합니다. 안중근은 회담을 마치고 러시아 장교단을 사열하던 이토히로부미에게 3발을 명중시켜 총살합니다. 총을 내던지고 나서는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대한제국 만세”를 외치고 현장에서 러시아경관에게 체포당하게 됩니다.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영상이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보고 가실게요^^

[출처] 도마 안중근 업적과 명언(안응칠과 이토히로부미), 중원대 한국학과|작성자 중원대학교


출처 : http://blog.naver.com/jwuackr/220014087905





업적 간단정리



 하지만 안중근 업적은 꾸준히 독립 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노브키에프스크에서는 국민회·일심회 등을 조직하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동의회를 조직하여 애국사상을 고취시키기에 앞장서고 군사 훈련을 담당하였습니다. 독립 운동가들이 펴내는 <대동공보>의 일을 도우기도 합니다. 그는 동포들에게 독립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합니다. 1909년에는 동지 12명과 함께 ‘단지회’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한일 합방의 핵심 인물인 이토히로부미와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을 암살하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1909년 10월 26일 일본 신문 기자로 가장하여 하얼빈 역에 들어간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합니다.  러시아 헌병에게 체포된 그는 일본에게 넘겨져 뤼순 감옥에 있다가 이듬해 재판을 받게 됩니다. 재판에서도 안중근은 “대한의군 참모 중장의 자격으로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이토록 죽였다.”고 밝히며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안중근은 감옥에 있는 동안 <동양 평화론>을 남겼고 1962년 건국 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습니다.


[출처] 도마 안중근 업적과 명언(안응칠과 이토히로부미), 중원대 한국학과|작성자 중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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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인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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